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4대 군사노선 (문단 편집) == 한계와 문제점: [[붉은 여왕 효과]] == 4대 군사노선은 전훈의 분석과 문제점 인식 및 그 대응이라는 점에서 방향을 올바르게 잡았다. 세부적인 문제점까지 잘 확인했고 그것을 네 개의 큰 분야로 묶어서 전반적인 군사 전략과 결합해서 군사력을 건설하는 체계도 잘 잡혔다. 그러나 4대 군사노선은 당시 [[소련]]과 [[중국]]의 [[중소결렬|대립 상황]]인 국제 정세 국방에서 자위를 내세우며 자력갱생이라는 정치적인 목표를 세우고 시작이 되었다. 무엇보다 4대 군사노선은 그 자체가 군사 전략이자 군사 전략에 맞춘 군사 정책이지 종합적인 국'''방(防)''' 정책과는 거리가 한참 있었다. 목표부터가 무력[[적화통일]]을 위한 구상의 현실화로 당장의 공세적인 군사 작전에 맞춰서 국가의 국방 정책이 따라가는 형태였다. 당연하지만 [[조선인민군 육군]]에 집중되는 형태였지 [[조선인민군 해군]]과 [[조선인민군 공군]]을 포함해서 종합적으로 군을 육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나 목표는 없었다. 심지어는 '''제대로 된 방어계획'''조차도. 그래서 북한은 무기도입과 군사력 증강, 군사시설의 건설 등으로 군사력을 통한 국방력은 일시적으로 강화했지만 장기적인 국방 정책의 부재로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가 드러난다. 무기도입 면에서도 [[자위권]]을 강조한 것과 반대로 [[공산권]]에서 넘겨받은 무기의 면허 생산, 복제, 개량에서 멈추었지 [[핵무기]]나 장거리 [[미사일]]을 제외하면 재래식 무기 개발 등의 계획은 전무했다. 그래도 북한은 군비 증강으로 남한을 압도하고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일설에 [[김일성]]은 10일 안에 항구 도시를 모조리 점령하여 미국의 증원을 막아서 전쟁을 막거나, 서울을 신속하게 점령해서 지연전 후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일대를 점령한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협상을 하는 구상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6.25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군이 최소한 3일 안에는 무너진다고 가정하고 미군의 증원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때보다 군비를 더 증강하면 더 빠르고 손 쉬울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군의 수준을 얕보고 주한미군을 주적으로 본 채 준비[* 그러나 6.25 당시 북한군 입장에서는 한국군도 만만찮은 상대였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졸전기록을 많이 남기긴 했지만 북한군의 2배 넘는 물량을 선보이며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계속 손실을 입으면서도 UN군의 [[방패]]역할 하나는 확실히 해낸 군대였다.]를 했는데 [[대한민국|남한]]도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북한에 대응할 군비를 꾸준히 증강시켜 미국을 비롯해서 외국에서 무기를 도입했고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전투력이 증대되어 사실상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북한의 우위에서 일정한 수준을 계속 유지하여 당장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하기는 했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의 격차는 안 나게 되는 [[붉은 여왕 효과]]가 적용이 된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전면전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1970년대는 한국도 이미 어느 정도 경제 수준이 올라와 있었고 군사력 강화를 위해서 신무기 개발에 나선다. 즉, 북한이 전면전에 대한 준비가 된 시점에서 한국도 그에 맞춰서 전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군의 이런 투자는 1980년대부터 성과를 보이면서 군사력 격차를 크게 줄인다. 대한민국 국군은 [[M48 패튼]] 시리즈를 1960년대에 도입했고 1968년부터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면서 [[M16 소총]]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이후 [[닉슨 독트린]]의 발표로 미국에 의존한 국방에 한계를 느끼고 1970년대부터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율곡사업]] 등 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서 1970년대부터는 [[M2 / M101 계열 105mm 곡사포|M101 105mm 곡사포]]와 [[M16 소총]], [[발칸포]] 등의 각종 무기를 면허생산하면서 동시에 [[K1 기관단총]], [[K2 소총]], [[K-1 전차]], [[K200 APC|K200 장갑차]] 등의 국산무기들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이다. 물론 K1 기관단총이나 K-1 전차 등이 제식 무기로 선정되고 실전배치가 된 것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반대로 북한은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는 원동력인 경제력이 1970년대부터 성장이 둔화되었고, 1980년대에는 아예 정체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군비 증강만큼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도 1980년대에는 북한이 경제력도 충분했고 공산권 우호국도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투자와 더불어서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군사적인 우위는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1980년대에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하향곡선을 그리던 경제가 1993년의 [[고난의 행군]]이 터지면서 한방에 훅 가버린다. 군사력 경쟁의 원천인 경제가 무너지고 거기다 무기 도입선이었던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몰락하자 더 이상의 무기 도입도 불가능해지면서 군비 증강이 원천 차단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의 2차 석유파동과 그 영향으로 약간의 위기는 있었지만 이 것을 극복하고 경제 성장이 지속되어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삼저호황이라는 이름의 지속되는 호황기를 맞이하고, 1990년대 초~중반 시기까지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 초반 [[김영삼 정부]] 이후부터는 해군과 공군이 [[기어링급]]과 [[F-4 팬텀 II|F-4]], [[F-5]] 등의 구식 무기를 주력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KFP 사업]], [[1~2차 FX 사업]], [[광개토대왕급 구축함|KDX-1]],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KDX-2]] 등의 사업을 진행하여 공군과 해군을 증강했다. 게다가 육군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아서 [[K-1 전차|K1A1 전차]], [[K-9 자주포]] 등의 신무기 개발 및 실전배치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또한 기존 [[노태우 정부]] 때 차관으로 빌려준 것을 회수하고자 시작한 [[불곰사업]] 등의 신무기 도입과 개발을 진행하여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된 1차 불곰사업으로 T-80U 전차 33대와 BMP-3 장갑차 33대, 그리고 Metis-M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70문, 탄약 1250발과 이글라 휴대용 대공미사일 발사기 50문, 탄약 700발을 도입하였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된 2차 불곰사업으로는 T-80U 2대, 포수조준경에 열영상 장비가 장착되어 야간 교전능력이 강화된 BMP-3, Metis-M 발사기 156문, 탄약 11500발 등이 추가 도입되었으며 무레나 공기부양정 3척, Il-103, Ka-32A 등이 도입되었다. 물론 [[1997년 외환 위기]]로 경제 상황이 안좋아지면서 일부 계획이 취소되고 지연되거나 물량이 축소되는 사례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세종대왕급 구축함|KDX-3]], [[독도함]], [[FA-50]], [[KUH-1 수리온]] 등의 무기 개발과 함께 [[F-15|F-15K]], [[F-35]], [[E-737]], [[A330 MRTT]], [[AH-64|AH-64E]] 등의 신무기들도 도입되었거나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군과 비교하면 양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질적으로는 우세라는 점을 알고 '''북한 따위'''와 전쟁하는 것은 생각도 안하고, 차라리 [[일본]]이나 [[중국]]을 가지고 떡밥을 물고, 대양해군이니 [[항공모함]]이니 [[F-22|F-22 랩터]], [[F-35]] 등의 이야기를 한다. 이미 북한군 이전에 북한이라는 나라 전체가 막장이 된 상황에서, 남한이 전쟁에서 질 거라는 생각은 이제 아무도 안 한다. 그 결과 북한은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지니고 싸울 생각이었지만 막상 현실은 북한이 군비 증강하는 만큼 남한도 했기 때문에 북한은 오히려 '''남한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서''' 군비를 증강해야 했다. 그러다가 군비 경쟁의 원천인 경제력이 박살나자 역전이 되어버렸고 이로 인해 이론적으로는 효율적이고 실리적이었던 북한의 4대 군사노선은 각자 특유의 부작용을 매우 잘 드러내면서 완전히 막장이 되어버린다. * '''전 인민의 무장화''' :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인구수가 급감했고, 여기에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458597|저출산 및 고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이전의 군세를 유지하기도 버거워졌다. 또한 인구대비 5%에 복무기간 10년, 실질적으로는 '''무기한'''인 막장 조건의 [[징병제]]를 실시하다보니 징병제의 단점인 '군 복무층의 생산성 저하'가 매우 극명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에 출생한 북한 주민들의 신체 스펙 자체가 낮아져서 [[https://www.rfa.org/korean/in_focus/nk_nuclear_talks/joinarmy-03262015095114.html|2015년에 입대규정 제한까지 없애버렸으니]] 말 다했다. 기본적으로 생산성이 없고 물자와 인력만 소모하는 집단인 군대를 국가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하게 유지하다보니 경제 상황이 개선될리가 없다. 이런 군국주의 사회는 "전쟁을 통한 외부로의 진출 및 약탈, [[식민지]] 경영으로 연명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삼고 있는데, 북한은 수십년동안 외부 진출은 커녕 전쟁 한번 하지 않았다. '''전쟁하지 않는 군국주의 국가의 결말은 멸망뿐이다.''' * '''전 국토의 요새화''' : 한국전쟁 이후 중저고도 [[방공망]]을 죽어라 증강한 북한이었으나 이 후 공군의 지상공격 트렌드가 고고도 정밀폭격으로 바뀌었고, 이미 만들어놓은 방공망의 유지비용 때문에 고고도 방공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번개-5]]와 [[번개-7]]를 개발하는 등 나름대로 갖춰지고는 있다. 하지만 당초 목표로 삼은 남한+미국의 공습에 대응하기에는 정말로 턱없이 부족한 숫자일 뿐더러 대다수의 방공 시스템들은 [[S-75]], [[S-125]], [[S-200]]과 같은 구식 체계들이라 남한+미국의 [[스텔스기]], [[순항 미사일]], [[탄도탄]], [[전자전]], [[무인기]]이나 [[SEAD]] 작전으로 허무하게 파괴될 확률이 높다.] '''현대 공군에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저고도에서 활동하는 헬기에게는 유효한 상대이지만, 그게 끝. 현대전에서 중요한 것은 고고도에서 활동하는 적 공군의 고정익기 편대, 특히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저지하는 것인데 중저고도 방공망은 이렇게 고고도에서 활동하는 적 공군을 절대 저지할 수 없다.] 고고도 방공병기의 가격이 비싸기도 하지만. 그리고 전 국토를 요새화하는 것 또한 필요 이상의 비용이 들어갈 뿐이다. 국토를 요새화할 돈으로 자본 경영을 하게 된다면 생산성 증대와 이윤 창출을 기대할수 있으며, 전 국토를 요새화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군대를 양성할 국방비 증대를 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북한도 이런 것들을 시도해보기는 했지만 공산주의 국가 특유의 부조리함과 경제 분야에 별로 전문성도 없었던 독재자가 마음대로 해먹다 다 말아먹었다는게 문제. 거기에다가 남한군이 수천 발 단위의 [[벙커버스터]], [[현무 미사일]]로 무장하면서 북한의 지하벙커들도 전시에 파괴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 '''전군의 간부화''' : 북한 특유의 [[신정정치]]에 가까운 국가 운영 때문에 간부를 육성한다 해도 군인으로서의 자질보다는 당에 대한 충성심과 인맥 유무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 군인으로서의 능력이 아무리 졸렬해도 출신성분이 좋거나 [[조선로동당]]과 인맥이 좋다면 [[똥별|높은 자리]]가 보장되지만, 아무리 군사적 능력이 좋다 한들 로동당과 별 인맥이 없거나 윗선에 뒷돈을 찌르지 않으면 한직을 전전하거나 한다. 출신성분이 나쁘면 간부로 육성될 기회가 오기는 커녕 [[속도전 청년돌격대|건설부대]]로 들어가야 하는 건 덤. 게다가 [[최고존엄|체고조넘]]에게 밉보이면 가차없이 숙청되는 북한의 체제 상 정예 간부는 커녕 제대로 된 병사조차도 양성하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극한의 경제문제까지 겹치면서 이제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군인의 신분을 가진 도적떼들이나 양성하는게 한계이다.]] 그리고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은 군대의 쿠데타를 우려해왔고 [[정치장교]]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즉, [[정치장교]]들이 북한군 지휘관들의 지휘체계에 간섭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 존재한다 해도 정치장교가 지휘체계에 간섭하면 그 장점을 전혀 발휘할 수 없는 법이다. * '''전군의 현대화''' : 고난의 행군 이후의 북한군은 현대화는 커녕 '''철저하게 구식화되었다.''' 육군은 전세계에서 전쟁 좀 할만하다는 나라들이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는 [[3.5세대 전차]]는 커녕 [[3세대 전차]]조차도 없고, 현대 전차의 세계에서는 좋지 않게 취급되는 [[2세대 전차]]나 겨우 보유할 따름이다. 포병과 방공체계들도 1960~70년대에 제작된 시스템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2차대전기 무기들이 현역으로 운용되고 있을 지경이다. 해군, 공군은 차라리 없는게 낫다 칠 정도로 세력이 미약하다. 이게 다 [[선군정치]]를 통한 생산성 저하와 1인 독재자 체제에서 기인한 경제적 실책이다. 북한군으로서는 차라리 이들 무기들이 최신형이었을 시기에 바로 전쟁을 벌이는게 승산이 조금이라도 더 높았을 것이다. 그나마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비대칭 전력을 위해 현대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군의 현대화라는 목표에는 전혀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리하면 분석은 잘했고 문제점 개선방향과 정책도 나쁘지 않았지만 '''약간''' 늦었고, 그 약간 늦은게 붉은 여왕 효과를 불러 일으켜서 시기가 너무 늦어버려 전쟁 개시를 차일피일 미루다 이 지경까지 왔고, 결정적으로 전쟁만 생각했지 국방을 생각하지 않은 결함이 있었던 정책이다. 즉, 단기결전을 염두에 둔 짧은 기간의 전략으로서는 효용이 있었겠지만 북한처럼 __수십년씩이나__ 지키면서 묵혀둘 가치는 전혀 없었던 급조된 전략에 불과했다. [[분류:조선인민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